역사는 마치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 같습니다. 여러 국가가 주인공이 되어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등을 돌리며 복잡한 관계를 맺어가죠. 7세기 말부터 10세기 초 동아시아는 바로 그런 드라마의 절정이었습니다.

북쪽의 발해와 거란, 남쪽의 신라와 일본. 이 네 나라가 펼치는 힘과 외교의 각축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얽혀 있었고,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시작은 동지, 끝은 적: 발해와 거란의 엇갈린 운명
오늘날 우리는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로 거란을 기억하지만, 두 나라의 첫 만남은 의외로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통의 목표를 가진 '전략적 동지'에 가까웠죠.

우연한 동맹: 당나라에 맞서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동아시아의 패권은 당나라가 쥐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으로 이루어진 대조영 집단에게 당나라는 거대한 위협이었죠. 바로 이때, 당나라의 지배에 반발한 거란족이 대규모 반란(이진충의 난)을 일으킵니다. 이 혼란은 대조영에게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는 이 틈을 타 동쪽으로 이동해 698년, 마침내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건국합니다.
당시 당나라는 발해 건국 세력을 '거란의 잔당'으로 여길 만큼, 두 세력의 연관성을 높게 보았습니다. 실제로 발해 건국 초기, 두 세력은 당나라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며 암묵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던 셈입니다.
균열의 시작: 힘의 균형이 바뀌다
하지만 영원한 동맹은 없었습니다. 발해가 점차 성장하고 8세기 중반 이후 당나라와 평화 관계를 구축하면서, 거란과의 관계는 서서히 식어갔습니다. 발해는 거란을 견제하기 위해 국경에 강력한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죠.
결정적인 변화는 10세기 초, 야율아보기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흩어져 있던 거란 부족을 통합하고 강력한 국가(요나라)를 세우며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이제 거란은 발해에게 '우연한 동지'가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강력한 적'이 되었습니다.
남쪽의 또 다른 축: 신라와 일본의 복잡한 우정
북방에서 발해와 거란이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동안, 남쪽의 신라와 일본 역시 복잡한 외교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필요에 의한 화해와 견제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한때 동맹이었던 당나라와 전쟁(나당전쟁)을 치른 후 국제적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신라가 손을 내민 곳이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당의 압박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을 느낀 두 나라는 7세기 후반부터 활발한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천황 중심의 율령 국가'로 만들면서 신라를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로 두려는 외교적 태도를 고집했습니다. 당연히 신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양국 사신들 사이에서는 서열 문제로 인한 자존심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발해의 등장, 새로운 변수
이 복잡한 관계에 발해의 등장은 새로운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일본은 신라를 견제할 카드로 발해를 주목했습니다. 727년, 발해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며 공식적인 관계를 시작했고, 일본 역시 신라와의 대항 관계 속에서 발해와 우호적으로 교류했습니다.
이로써 동아시아에는 '신라-당'으로 이어지는 남북 동맹과 '발해-일본'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축이 형성되며, 마치 십자(+) 모양의 외교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거대한 충돌,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
평화로운 시기는 길지 않았습니다. 10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맞이하게 됩니다.

10세기, 격동의 시대와 힘의 공백
907년, 300년 가까이 동아시아의 중심축 역할을 하던 당나라가 멸망했습니다. 한반도 역시 신라의 힘이 약해지며 후삼국으로 분열되는 대혼란기였죠. 이 힘의 공백을 파고든 것이 바로 거란이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거란의 위협 앞에서, 한때 '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발해는 점차 고립되었습니다. 발해는 거란에 맞서기 위해 후삼국이나 일본과 연대를 모색했지만, 당시 신라는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벅찬 상황이라 발해를 도울 여력이 없었습니다.
발해 멸망, 그리고 새로운 판
결국 926년,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 앞에 발해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건국 228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나라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판 자체를 뒤흔든 거대한 충격이었죠.
발해의 멸망으로 신라와 함께 한반도 역사의 한 축을 이루던 '남북국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건국된 고려는 "발해는 우리의 친척 나라"라며 수많은 발해 유민을 받아들였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훗날 26년간 이어지는 '고려-거란 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한편, 일본은 894년 견당사 파견을 중단한 것을 계기로 대륙과의 공식 외교를 줄이고 독자적인 '국풍(國風) 문화'를 발전시키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역사의 교차로에서 배우는 것
발해, 거란, 신라, 일본이 얽히고설켰던 200여 년의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국제 관계란 결코 선과 악, 친구와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 나라의 운명은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유연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교훈을 말이죠.

이들의 흥망성쇠는 먼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급변하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외교적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지, 역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길을 묻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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